고양이 밥만큼도 안 먹는 나를 보면서 속상해 엄마에게 뇌까리시던 외할아버지의 말씀과

 그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문에 많은 시간을 혼자 늘어져 누워보내거나, 친구들

 모두 학교가 있는 대낮에 혼자 마루 끝에 맥없이 쪼그리고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의

 화초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거나, 하늘이 두둥실 떠가는 구름에 홀려 시간을 잊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나 데리러 온 저승사자가 아닌가 싶은데 그때 키가 천장에 닿는

 도깨비도 보았고 이상한 꿈도 숱하게 꾸었다.

 

 

 

 

 

 

 

 

 

- 김수현, [내 식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

                                       동아일보 출판부 편, [나의 길 나의 삶] (동아일보사 1991년)   

                                                                                                         

그녀가 어린 시절을 돌이켜본 위의 글처럼,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영양부족으로 12달

만에 태어난 그녀는 돌이 지나도록 걷지도 못하고 잔병치레가 잦아 식구들의 애간장을

태웠다고 한다. 몸이 약해 거의 학교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김수현은 글을 깨치고 나서는 소설책을 벗으로 삼고 늘 책에 파묻혀 살았다.

결석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명석한 머리 덕에 그녀는 시험삼아 응시한 사범학교 시험에

붙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이라는 직업을 탐탁지 않게 여겼

던 그녀 어머니의 반대로 그녀는 사범학교를 포기하고 청주여중에 입학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여고에 진학한 그녀는 늘 학교공부보다 소설이나 영화에 심취해

서 살았다. 그래도 성적만은 늘 상위였던 그녀는 1961년 청주여고를 졸업하고 무시험으

로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활의 낭만도 잠시,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가 위암에 걸려 가정형편이

더 어려워지자 일곱식구의 가장이 되어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인 61년, [고대신문] 지령 3백호 기념 단편소설 공모에 낸 작품이 가작

에 당선된 뒤, 그녀는 오로지 상금을 목적으로 드라마나 소설작품 공모가 날 때마다 응모

를 했다. 그렇게 대학 4년을 아르바이트와 작품 공모에서 번 돈으로 65년 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잡지사 등에서 일했다.

그러나 스스로 그만두거나 혹은 쫓겨나면서 그녀가 직장 생활에서 터득한 것은 자신은

'직장생활 부적격자'라는 사실뿐이었다.

김수현은 1968년 문화방송 개국 7주년 라디오 연속극 공모에 [그 해 겨울의 우화]가 당

선되어 방송작가로 데뷔했다.

 

 

 

이렇게 해서 방송작가의 길을 걷게 된 김수현의 첫 작품인 [그 해 겨울의 우화] 는

[저 눈밭에 사슴이] 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라디오 방송을 타게 되었다.

연속극 형식으로 제작되었던이 드라마는 김수현 특유의 독특한 인물과 깔끔하면서도

직선적인 대사로 곧 청취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이후 영화로도 각색되었다.

그 후 4년동안 [ 약속은 없었지만] [지금은 어디서] 등의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던

그녀는 1972년 목요연속극 [무지개]로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작했다.

이후 [새엄마]라는 드라마에서 그녀의 이름을 시청자들의 머리 속에 각인 시키게 되었고,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녀만의 독특한 드라마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 시사인물 사전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