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세고 엔터테인먼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은 김수현은 그 첫작품으로 <내 남자의 여자>를

내 놓았다. 드라마에서 흔한 소재이긴 하지만 양념거리 소재의 불륜이 아닌 불륜 그 자체를 깊게 써

보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김수현이 불륜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에 대해 시청률 사냥이다, 혹은 이제

소재가 고갈된 것이 아니냐 하는 등의 불만이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에 팽배되었다. 그러나 그가

불륜이라는 소재가 진부하기 그지없는 소재라는 것을 모르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불륜

소재의 드라마가 있지만 불륜 남녀들의 심리에 포커스를 정확하게 맞추어 불륜 그 자체를 풀어내는 

드라마가 없었던 까닭이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불만을 일축이라도 하듯 <내 남자의 여자>가 방영

되기 전날 이에 대해 김수현은 홈페이지에 <무늬만 불륜이 깝깝해서요> 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 남자의 여자의 등장인물들과 줄거리는 지극히 간단하게 설정되었다. 

불륜 그 자체를 풀어내는데 복잡한 구조도는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내 남자의 여자>는 그들의 가

족이 등장인물의 전부였고 주인공인 세 남녀의 심리극이라는 핵심은 최종회까지 철저하게 지켜졌다.

 

4월 2일 첫 회가 방송되면서 불륜이라는 소재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식상하다, 진부하다는 평은 소재자체에 대한 평가였지 드라마 내용에 대한 평가는 아니었다.

김수현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와 흡입력은 방영초부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김수현은 애초의 약속대

로 주인공들의 심리선을 놓치지 않고 충실하게 풀어냈다. 불륜이라는 불순한 소재와 함께 불륜남녀들

의 안방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김수현의 정공법은 다소 위험했고, 파격적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

었다. 그것이 그야말로 불륜의 본질이자 진실이며, 사실 그대로라는 것을.

 

불륜이라는 소재에 대한 원초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종회가 방영되었다. 불륜녀였던 화영은

자신이 목숨을 던져 사랑한 남자의 사랑이 얼마나 비겁한 것인지를 깨닫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지수는 남편과의 재결합을 고사하고, 석준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여지를 남겨둔다. 

그리고 화영에게 버림받는 홍준표 역시 지수와의 재결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불륜녀였지만 화영은 목숨을 다해 준표를 사랑했다. 지수도 자신의 가정을 위해 전력투구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였었다. 불륜 이야기의 이면에는 그들의 동성간 애정의 각도도 같이 묘사되었다.

드라마에서 보기드문 심도있는 심리전이었으며 배신감에 불타오르면서도 두 친구간의 우정은 우정

을 넘어선 그 무엇인가를 내재하고 있었다.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며 안일하게 행동하던 준표는 이기적인 남자들의 본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 했다. 

열정이 식은지 오래인 지수에게서는 편안함과 익숙함을 구했고,  화영에게서는 육체적 사랑과 열정을

간구했다.   준표는 지수도, 가족도, 아들도 화영도, 어느 것 하나도 모질게 손을 놓아 버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는 치루고 싶어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홍준표의 우유부단함

과 이기를 질타했지만 어쩌면 홍준표의 두 마리 토끼잡기 행동은 인간의 본성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이트 컬러의 고상한 가면을 쓰고도 인간 본능에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던 홍준표, 아예 내놓고 바람을 

피는 오달삼( 김병세분) , 도우미 아주머니의 몸에 은근슬쩍 손을 대는 홍회장(김정훈분), 김수현은 불

륜이라는 소재에 걸맞게, 불륜을 일으키는 근원지의 하나인 남자의 생리학적 본능도 은근슬쩍 강조해 

보이고 있다.  남자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싫어했던 까닭은 남자로서는 보기 불편한 부분들이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주의적 채색기법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지수가 남편과 재결합을 하거나 석준과 새로운 사랑이 결실을 맺었다면 이 드라마는 한없이 진부

한 드라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 하나의 인격체로 독립한다. 처음에는 서로에 의해서

관계를 형성하고 수동적인 연결고리로 유지되어 있던 그들이 마지막엔 서로에게 구속되어 있던 연결

끈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잘라 버리고 독립체로 거듭난다. 인간은 원래 외롭게 태어난 존재이고 언제라

도 다시 혼자가 될 수 있고,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각성시켜주듯 말이다.

 

지수의 언니인 은수가 강제로 떠맡기고 간 남편 친구의 딸을 맡이 키우기로 결심하는 에피소드 또한

눈여겨 볼 만 하다. 김수현 드라마에는 이러한 아름다우면서도 전혀 특별난 일이 아닌 것처럼 티가 나지

않으면서 평범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매력 중의 하나이다.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금주고모가 업둥이로 들어와 길러졌다. 그리고 자식이 없는 금주고모를 안교장

님의 둘째 아들이 제사를 지내주기로 하는 설정, 내사랑 누굴까에서는 아이 딸린 고은(명세빈분)을 

현식(류진분)의 아내로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홀로 계신 장인 장모를 모시게 하는 설정들처럼 내 남자

의 여자에서는 대안가정 차원에서 어려운 부모를 대신해 아정이를 키우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말이 난 김에 조금 더 덧붙여보자면 사랑과 야망에서는 [매친여자] 아끼꼬를 가족들이 품고 살아가는

모습이 있고 ,특집 드라마 [혼수]에서는 딸의 혼수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김해숙분)가 새어머

니였다. 크게 부각시키지 않은 채 드라마의 밑바닥에 베이스처럼 깔아 둔 이러한 설정들은 김수현 드

라마를 <자극>적인 것으로만 보는 이들에게 결코 보이지 않는 장점들이다.

 

그들은 업둥이건, 얹혀 사는 사람이건, 입양되었건, 새어머니건, 그들의 주변인들은 어느 누구도 그

런 관계를 커버하기 위한 오바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그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원래

가족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관계에는 의문이 없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인간 자체가 있다. 

 

정을영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더욱 빛을 발했던 [ 내 남자의 여자 ] 는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종영했고, 김수현도 간만에 < 괜찮은 작업 >이었다며 제작진들의 노고에 감사했다.

 

불륜 드라마가 불륜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이제 그만 두기로 하자. 작가가 불순한 소재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작가는 소재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어떤 소재이건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에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논해야 한다. 그리고 불륜이라는 소재의 드라마가 불륜을 조장

한 적은 없었다.  단 한번도 불륜은 승리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어떤 소재의 드라마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하는 시청자들 각자의 깜냥이 중요한 문제이다.